고베, 너희는 이정효를 너무 얕잡아봤어!…'0-2→3-2 광주의 기적' 현장 비하인드
- 입력
- 2025.03.13 11:34
- 수정
- 2025.03.13 11:57
 |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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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일본 클럽 비셀 고베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셨다.
고베는 지난 5일 홈에서 열린 광주와의 2024~2025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16강 1차전에서 2대0으로 승리해 유리한 고지에서 광주와의 리턴매치를 맞이했다. 그래서일까. 고베 사정을 잘 아는 축구계 관계자에 따르면, 고베는 12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16강 2차전을 앞두고 구단 차원에서 중동으로 답사를 다녀왔다. 올 시즌 ACLE는 4월~5월에 열리는 8강전부터 준결승, 결승전까지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모여 치른다. 카타르 등 베이스캠프 후보지를 물색하고 돌아온 건 8강 진출을 기정사실로 여겼다는 뜻과 다름없다. 리그 스테이지와 16강 1차전에서 광주를 상대로 연승을 거둔만큼 '광주는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식의 자신감도 있었을 터다. 고베의 답사 소식을 전해들은 광주 구단 관계자는 "우린 답사할 계획조차 없었다. 고베와의 2차전 준비에 모든 걸 쏟았다"라고 말했다.
2차전을 대하는 마음의 차이가 결국 차이를 만들었다. 광주는 잃을 게 없었다. 구단 최초로 ACLE에 진출한 광주는 K리그 팀 중 유일하게 16강 티켓을 거머쥐었을뿐 아니라 16강 진출로 약 140만달러(약 20억원)를 확보한 상태였다. 선수단 연봉 차이가 대략 4배(광주 98억원, 고베 350억원)가 나는 팀을 상대로 패한다한들, 손가락질하는 팬은 없었을 것이다. 16강 1차전에서 고베의 공격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6백을 꺼내들었던 광주는 이날은 이정효식 공격 축구로 컨셉을 바꿨다. 이 감독은 "16강 1차전 후반전을 복기하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고베의 어떤 점이 취약한지 분석했다. 그리고 두 경기를 돌아보며 우리가 '광주답지 않았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광주다움'은 결국 '공격 앞으로'였다. 2022년 광주에 부임해 빠른 템포의 패스와 활발한 포지션 체인징, 공간 활용으로 K리그1 승격, K리그1 깜짝 3위, ACLE 진출 등의 성과를 낸 이 감독은 한 수 위 전력을 지닌 고베를 상대로도 "우리가 잘하는 걸 하자"고 선수들에게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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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적인 축구로 지난 2023년과 2024년 J리그를 제패한 고베는 라인을 내려 수비적으로 임했다. 요시다 다카유키 고베 감독이 밝힌대로, 광주의 핵심 공격수인 아사니를 집중마크해 무실점으로 8강 티켓을 거머쥐겠다는 복안이었다. 상대의 소극적인 경기 운영은 이 감독이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전반 초반부터 강한 전방 압박과 과감한 전진 패스로 고베 수비진을 사정없이 뒤흔든 광주는 전반 18분 박정인의 헤더 선제골로 앞서나갔다. '전반 선제골'은 2골차를 뒤집어야 하는 광주 입장에서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아사니는 상대의 그림자 마크에 거의 공을 잡지 못했지만, 반대쪽에 위치한 헤이스, 오후성, 김진호가 왼쪽 측면을 적극적으로 공략해 결국 균열을 만들었다. 미드필더 박태준은 "오늘 고베 선수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런 과정에서 후반 40분 상대 핸드볼 반칙에 의한 페널티킥 찬스를 얻어 아사니가 동점골을 넣었고, 후반 추가시간 13분엔 아사니가 전매특허인 골문 구석 상단을 찌르는 왼발 중거리 슛으로 8강 진출 확정골을 넣었다. 현장에서 '광주 역사상 최고의 경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라는 반응이 나온 '광주의 기적'은 그렇게 쓰였다.
'기적연출가' 이 감독은 "기아타이거즈 김도영의 말이 생각난다. '그런 날이 있잖아요. 뭘 해도 될 것 같은 날.' 오늘 경기를 준비하면서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 믿음이 갖고, 기대가 많이 됐다. 승리가 불가능해보였던 경기에서 결과를 보여준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라고 말했다. 상금 180만달러(약 29억원)와 8강 티켓,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K리그 역사상 아시아클럽대항전 최상위 무대에서 8강에 오른 최초의 시도민구단이라는 새 역사도 썼다. '정효볼'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분명한 건 이 감독이 ACLE 8강에만 만족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광주=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윤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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