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캐나다 토론토 스코샤뱅크 아레나. 미국프로농구(NBA) 토론토 랩터스-LA 클리퍼스전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여성의 솔로 목소리로 미국 국가가 불리기 시작했다. 그때 많은 캐나다 팬들이 야유를 보냈다. 가디언은 “미국 국가는 야유 속에 묻혔다”며 “오타와, 밴쿠버, 캘거리 등 다른 캐나다 도시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고 4일 전했다.
미국 국가가 캐나다 경기장에서 야유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디언은 “이번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25% 관세 조치가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에서 수입되는 주요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내 제조업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캐나다에서는 강한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분노가 경기장에서 터져 나왔다. 가디언은 “스포츠는 종종 정치적 갈등을 반영하는 공간이 된다”며 “경기장에서 이뤄지는 국가 연주는 단순한 ‘스포츠 의식’이 아닌 정치적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전했다. 가디언은 이어 “이웃 나라가 터무니없는 이유를 대며 캐나다에서 수출하는 상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경기장에 일어나 모자를 벗고 손을 가슴에 얹으며 그 나라 국가를 불러야 하는 의미는 이해하기 어렵다”며 “링크와 코트를 넘어 세계 현실을 생각하자 지금까지 보이지 않은 국경이 갑자기 뚜렷이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미국 국가가 캐나다에서 야유를 받은 대표적인 사례는 2003년 3월 몬트리올에서 열린 북미아이스하키(NHL) 경기다. 당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고 캐나다는 국제연합(UN) 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약 20만명이 몬트리올에서 반전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같은 날 열린 NHL 몬트리올 캐네디언스-뉴욕 아일랜더스전에서 미국 국가가 연주되자 캐나다 관중은 거센 야유를 퍼부었다. “참가국을 지지하고 존중해 달라”는 장내 안내 방송도 소용이 없었다. 당시 뉴욕 아일랜더스 골키퍼 릭 디피에트로는 “스포츠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불쾌했지만 팬들은 “전쟁을 반대하는 캐나다 국민의 의사가 표출된 것”이라고 맞섰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캐나다 국민의 반감은 앞으로 더욱 고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달 말에는 몬트리올에서는 NHL이 주관하는 ‘포 네이션스 페이스오프(Four Nations Face-Off)’가 열린다. 이 대회에서 캐나다와 미국이 맞붙는다. 아이스하키는 양국에서 모두 엄청난 인기를 끄는 종목이다. 2016년 이후 9년 만에 열리는 캐나다-미국전에서 캐나다 국민의 분노가 더 노골적으로 표출될 공산이 크다.
캐나다와 미국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정치·경제적으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스포츠 역시 두 나라가 공유하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NHL, 미국프로농구(NBA), 미국프로야구(MLB)는 양국에 걸쳐 있다. 토론토, 몬트리올, 밴쿠버 등에 연고지를 둔 캐나다 팀들은 오랫동안 미국 팀들과 경쟁을 펼쳐왔다. NBA, NHL, MLB에서는 미국과 캐나다 팀이 맞붙을 때 양국 국가가 연주된다. 미국프로풋볼(NFL)에는 캐나다 연고 팀이 없어 미국 국가만 연주되지만, 캐나다에서 열린 경기에서는 예외적으로 두 국가가 연주된 사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