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선출이 일을 냈다. 정성조(25·고양 소노)의 활약상은 팀을 넘어 리그 전체에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소노는 지난 15일 리그 2위의 강팀인 울산 현대모비스와의 경기에서 84-81로 이기며 5연패의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힘든 승부였다. 근소하게 리드를 유지하던 소노는 4쿼터에 1점 차이로 따라잡혔다. 절체절명의 순간 해결사로 나선 선수는 다름 아닌 3라운더 신인 정성조였다. 정성조는 작전타임 직후 이재도의 어시스트를 받아 3점 슛을 터트린 데 이어 스틸 속공까지 성공했다. 정성조가 4쿼터에 만들어낸 5점이 소노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성조는 이날 17분 48초 동안 16득점을 폭발시키며 커리어 하이를 작성했다. 짧은 출전 시간에도 불구하고 주전급 활약을 펼쳤다. 경기 후 김태술 소노 감독은 정성조에 대해 “픽 앤 롤 훈련을 할 때 반대쪽에 페이크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오늘 두 번의 상황에서 실제로 해냈다”라며 “습득력이 빠르고 농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정성조는 프로농구 최초의 동호회 출신 비선출 선수다. 중학교 때 학교 농구부에서 3개월간 운동을 한 게 그가 받은 엘리트 체육 교육 전부다. 데뷔 전 주로 3X3 농구를 했던 만큼 처음에는 프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단 안팎의 우려도 있었다.
정성조가 15분 이상의 출전 시간을 받은 건 전날 경기가 처음이다. 에이스인 이정현과 주장 정희재, 강력한 신인왕 후보인 1라운더 신인 이근준까지 주전급 선수들이 줄부상을 당하면서 소노는 고육지책으로 정성조 카드를 꺼냈다.
정성조는 팀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신이 난 듯 코트를 누비며 걱정을 불식했다. 클러치 상황에서도 쫄지 않는 패기와 역습 기회를 놓치지 않는 빠른 움직임이 돋보였다.

만신창이가 된 소노는 사실상 ‘이재도 원툴’로 한 경기 한 경기를 버티고 있다. 이정현은 복귀까지 최소 3주가 예상된다. 정성조가 꾸준한 경기력으로 새로운 공격 옵션이 돼준다면 소노는 조금이나마 숨을 돌릴 여유를 찾을 수 있다. 김 감독은 전날 “성조가 확실히 잘 해줘서 재도가 쉴 시간이 많아졌다”라며 “성조가 성장해주는 것이 팀에 도움이 많이 된다”라고 말했다.
정성조는 드래프트에서 선발된 직후 인터뷰에서 “제가 어려운 한계를 넘어서서 프로 데뷔를 했는데 다음에도 동호회 출신 프로 선수가 나오면 좋겠다”라며 “그래야 선순환이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외인 의존도가 높은 한국 농구는 ‘저변 부족’ 등이 겹치며 위기 진단을 받고 있다. 하지만 비선출 ‘프로 선수 정성조’의 성장은 한국 농구 생태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